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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로 꼽았을 때 있어 보이는 영화 7 편

그냥 쓰는 것 2020. 5. 20.

인생 영화로 꼽았을 때 있어보이는 영화 7편을 공개한다. 선정은 본인 혼자 진행했으며 딱히 기준 없이 떠오르는 대로 뽑았다. 후에 누군가에게 "인생 영화가 뭐에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오늘 이 리스트를 참고해 답변하시라. 넉넉하게 일곱 편이나 뽑았으니 이 중 가장 취향에 맞는 두 세 편을 골라 대답하면 된다. 가능하다면 리스트 속 영화를 모두 머리 속에 담아뒀다가, 듣는 이의 성향을 고려해서 당신의 인생 영화를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소개팅, 면접장, 회식자리, 상견례 언제든 인생영화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수 있다. 그 순간을 대비해두자.

 

사랑은 비를 타고 (1952)

 

 

50년대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다.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고하시라. 

<사랑은 비를 타고>를 인생 영화로 뽑는다면 당신의 유니크한 취향을 뽐낼 수 있다. 인생영화로서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은 OST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 제목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은 갸우뚱할 것이다. 그때 마치 아~ 이 영화를 모르시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아 노래 중에 씽 인더 레인 하는 노래 아시죠? 그 노래 나오는 영화에요" 라고 말하면 상대방도 박수를 치며 알아들었다는 듯 끄덕거릴 것이다. 세상에 이 영화의 OST인 Singing in the rain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 덕분에 유명한 노래의 출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호감이 어느새 쑥쑥 올라갔을 것이다. 참고로 필자의 인생영화이기도 하다. 

 

라이온 킹 (1994)

 

 

사람들이 당신에게 인생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정말로 당신이 인생의 지침서로 삼는 영화가 궁금하기 때문이 아니다. 질문의 목적은 오직 대화거리 형성에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의도로 들어오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해주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영화 <라이언킹>을 당신의 인생 영화로 소개하라. 비록 대답 한 마디로 깊은 인상을 남길 수는 없겠지만, 다들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별 의미 없는 질문들이나 몇 개 던지고—어느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대화를 마무리 할 것이다. 참고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파트로는 하쿠나 마타타를 대는 것이 편하다. <라이언킹>은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한, 예를 들면, 상견례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인생영화로 소개하기를 추천한다. 상황을 무난하고 무리 없이 넘어가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 (1991)

 

 

만약 당신이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성격이라면, 인생영화에 대한 대답으로 장면에 집중해 대답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영화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아 그 영화 제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정말 인상 깊어서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은 있어요" 라고 말하며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에 나오는 '차량 동반 절벽 투신' 씬을 거론하라. 영화 자체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넣어두고 오로지 그 마지막의 장면의 짜릿한 영화적 쾌감 혹은 저릿한 여운에 대해 이야기하라. "저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니었을거에요. 하지만 그 장면이 어딘가 모르게 제 가슴을 찌릿하게 하더라구요" 라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좋다. 당신을 아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다.

 

라쇼몽 (1950)

 

 

지식을 뽐내기을 위해서라면, 결코 너무 어려운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모르는 영화를 꼽았다가는 지나치게 잘난체하는 놈으로 낙인 찍히기 마련이다. 상대방도 잘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들어봤을 법한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때 <라쇼몽>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인생영화로 라쇼몽을 소개하면, 사람들은 "아아- 들어 봤어요 라쇼몽" 하면서 아는 체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쫄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으니까.(상대가 영화광일 것 같다면 그냥 라이언킹을 인생영화로 고르는 것이 당신의 신상에 이롭다) 그러면서 "같은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받아들이는 희극적 상황을 병렬적으로 배치한 영화적 센스에 먼저 감탄하고, 이 영화가 무려 7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다시 감탄했어요. 왜 요즘엔 이런 영화를 볼 수 없죠?" 라는 식의 간략한 감상을 남기면 된다. 사람들은 당신을 영잘알로 여기게 될 것이다.

 

버드맨 (2014)

 

 

좀 더 아는 체를 하고 싶다면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는 것이 좋다. 그의 영화는 일단 유명하고, 작품성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알렉산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이름이 간지난다. 물론 이름이 좀 더 있어보이는 감독으로는 타르코프스키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의 이름은 물론, 그의 작품 중 어느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영화로 꼽는데에는 문제가 있다. 또 만약 당신이 타르코프스키를 인생영화로 들었다가 영알못이라는 사실이 들통났을 때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다른 영화야 워낙 유명하니 그냥 호기심에 봤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시네필이 아닌 이상 이름조차 들어보기 어려운 감독이기에 탈압박이 쉽지 않다. 혹시라도 시네필 앞에서 인생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 <라이온킹>을 대거나 아니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대 얼굴에 물을 뿌린 후 무례한 질문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못해도 최소 두 시간은 지루한 영화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아무튼 <버드맨> 정도라면 지루해보이지만 꽤 유명해서 우연히 보게 됐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이름이 간지나는 이냐리투 감독을 계속 언급해가면서 <버드맨>의 훌륭한 원테이크 기법과 그 기법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계속 칭찬하라. 주연 배우인 마이클 키튼의 삶이 극 중 배역의 삶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당신을 있어보이게 해줄 것이다.

 

최악의 하루 (2016)

 

 

한국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때 명심해야 할 점은 결코 유우명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를 꼽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기업 냄새가 나지 않는 독립영화 스타일을 물색해보는 것이 좋다. 나라면 <최악의 하루>를 나의 인생 영화로 택하겠다. 김종관 감독을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칭찬하는 것으로 운을 띄우기를 추천한다. 칭찬 마지막 즈음엔 "아 정말 이런 분은 좀 잘 됐으면 좋겠어" 라는 식의 감성적인 말을 남겨 여운을 흘려라.

<최악의 하루>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의 감정선이다. 다른 세 남자를 만날 때 마다 가면을 바꿔써가며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던져라. 그러면서 진짜 '나'의 가면은 어떤 것일까라는 식의 질문을 말꼬리 흘리듯 은근하게 던져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연인 앞에서, 가족 앞에서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그 배역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거짓말을 밥먹듯한다. 당신 이야기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인생영화로 써먹기 좋은 한국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많다. 특히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같은 것들이 제목부터 있어보여서 인생영화로 꼽기에 탁월하다. 다만 얼마 전 홍상수 감독이 구설수에 올랐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의 사회적 시선을 회피하기 위해 별 다른 이슈가 없었던 감독을 선택하라. 

 

어벤져스 (2012)

 

 

어벤져스를 인생 영화로 꼽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앞에서 두 편 이상의 굉장히 있어보이는 영화를 이미 인생 영화로 꼽은 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그럴 듯한 인생 영화 이야기를 두 편이나 연달아 했다면, 아마 사람들은 당신의 세번째 인생 영화도 굉장히 있어보이고 지루한 영화일 것이라고 미리 판단 내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때 <어벤져스>를 당신의 인생영화로 소개해서 그들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 바로 포인트다. 예상이 뒤집혔을때 사람들은 "에이 뭐야 하하호호" 하는 반응을 보이며 당신을 굉장히 지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재미없는 범생이도 아닌, 유쾌한 지식인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저스티스 리그> 따위의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도 어벤져스 정도는 돼야 구색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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